홍콩 통화청, 유동성 쓰나미 일으켜…40년간의 환율 방어 위해 은행 시스템 유동성 세 배로 늘려
홍콩 – 홍콩 통화청(HKMA)이 불과 나흘 만에 홍콩 은행 시스템에 1,160억 홍콩달러(약 150억 미국달러) 이상을 쏟아부으며 시스템 내 유동성을 세 배로 늘렸습니다. 이는 40년 넘게 유지해 온 홍콩달러의 미국달러 페그제(환율 고정 제도)를 지키기 위한 조치입니다.
이번 전례 없는 대규모 개입은 2015년 이후 홍콩에서 가장 공격적인 통화 방어입니다. 홍콩달러가 허용된 변동 폭의 상단(강세 구간)에 반복적으로 도달하자, 사실상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홍콩 통화청이 지난 목요일부터 세 차례에 걸쳐 미국달러를 팔고 홍콩달러를 사들였습니다.
홍콩의 한 주요 투자은행에서 오랫동안 통화 전략가로 일해온 전문가는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급격한 유동성 변동(whipsaw)"이라며 "홍콩 통화청은 어떤 통화 투기 게임에서도 자신들이 자금력이 훨씬 풍부하다는 것을 모두에게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최근의 개입은 화요일 오전에 일어났습니다. 홍콩 통화청은 78억 1,200만 미국달러를 매도하며 605억 4,300만 홍콩달러를 시장에 풀었습니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환율 방어 사이클에서 단일 규모로는 가장 큰 작업이었습니다. 이에 앞서 5월 2일과 5월 5일에도 소규모 개입이 있었습니다. 당시 통화청은 각각 465억 3,900만 홍콩달러와 95억 3,200만 홍콩달러에 해당하는 미국달러를 팔았습니다.
현금이 넘쳐나는 은행 시스템의 변화
집중적인 환율 개입은 홍콩의 통화 환경을 거의 하룻밤 사이에 바꿔놓았습니다. 은행 시스템에 풀린 현금의 총액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인 '어그리게이트 밸런스(Aggregate Balance)'는 지난주 465억 4,000만 홍콩달러에서 약 1,613억 8,400만 홍콩달러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2021년 이후 보지 못했던 수준입니다.
특히 이번 개입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향후 금리 인하 신호를 시장에 줄지 주목받는 5월 7~8일 통화 정책 회의를 불과 48시간 앞두고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홍콩의 한 명문 대학 통화 정책 연구원은 "은행 시스템은 현재 유동성에 잠겨 있으며, 이는 기계적으로 단기 HIBOR(홍콩 은행 간 금리)를 3050bp(0.30.5%) 내릴 것"이라며 "일반 시민에게는 잠재적으로 주택 담보 대출 금리가 낮아지는 것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예금 이자 수익도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면에서는 복잡한 경제적 움직임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홍콩달러 강세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항셍지수(Hang Seng Index)가 연초 이후 12% 상승하며 주식 투자 자금이 유입되었고, 홍콩과 미국 시장 간의 상당한 금리차로 인해 유리한 '캐리 트레이드'(저금리 통화 빌려 고금리 통화에 투자) 기회가 생겼으며, 중국 위안화를 포함한 지역 통화의 전반적인 강세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수십 년에 걸친 균형 잡기
홍콩의 환율 방어는 1983년에 도입된 '연결 환율 시스템(Linked Exchange Rate System)'에 의해 의무화되어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홍콩달러가 허용된 변동 폭의 상단(달러당 7.75 홍콩달러)이나 하단(달러당 7.85 홍콩달러)에 도달하면 홍콩 통화청이 개입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빅토리아 하버의 선박들이 오가는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는 국제금융센터(IFC) 전망대에 선 익명을 요구한 홍콩 통화청의 고위 관계자는 이번 개입이 시스템에 의해 자동적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이것은 시스템이 설계된 대로 정확하게 작동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시장을 예측하려 하지 않는다. 환율이 7.75에 도달하면 미국달러를 팔고, 7.85에 도달하면 미국달러를 산다. 현재의 개입은 시스템이 여전히 견고하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홍콩 통화청은 약 4,000억 미국달러에 달하는 외환 보유고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큰 규모입니다. 현재의 방어 작전에 투입된 자금은 전체 보유고의 4% 미만입니다.
유동성 물결 속 승자와 패자
갑작스러운 유동성 급증은 홍콩 금융 시장 전반에 걸쳐 명확한 승자와 패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은행 부문에서는 HSBC, 중국은행(홍콩), DBS 홍콩 같은 금융 기관들이 상반된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값싼 자금이 넘쳐나면서 순이자 마진이 줄어들지만, 많은 분석가들은 대출량 증가와 수수료 수입으로 이를 상쇄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 글로벌 투자회사의 은행 부문 분석가는 "홍콩 은행들은 비슷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작년에 순이자 수입을 21% 늘렸다"며 "그들의 가격 결정력은 여전히 강하며, 금리가 압박받을 때 다른 수익원을 찾는 데 능숙해졌다"고 언급했습니다.
부동산 부문은 좀 더 복잡한 상황입니다. 홍콩 집값은 9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지난 2월에는 전월 대비 0.9% 하락했습니다. 저렴해진 자금이 개발업체들의 부채 부담을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임금 정체와 지속적인 인구 유출로 인한 근본적인 수요 약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주요 개발업체들에게 자문을 제공하는 한 부동산 컨설턴트는 "부동산 문제의 핵심은 유동성이 아니다"라며 "돈을 더 싸게 빌릴 수는 있지만, 사람들을 홍콩에 머물게 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아파트를 사도록 강요할 수는 없다. 구조적인 어려움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주식 시장은 일시적인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과거 패턴을 보면 이러한 유동성 주입은 개입 후 한 달 안에 H주(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본토 기업 주식)의 밸류에이션을 5~8% 높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기술주에서 기회를 창출하는 반면, 유틸리티(전기, 가스 등 공공 서비스) 관련 주는 뒤처질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전망: 세 가지 시나리오
시장 참가자들이 홍콩 통화청의 움직임을 소화하면서, 현재 상황이 향후 6~18개월 동안 어떻게 전개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가장 유력한 기본 시나리오는 미국 연준이 연말까지 약 75bp 금리를 인하하여, 홍콩으로 자본 유입을 이끌었던 금리차를 점진적으로 줄이는 것입니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연말까지 자금 유입이 정체되고, 4분기에는 소폭의 자금 유출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더 어려운 시나리오는 연준이 금리를 동결하여 현재의 자금 유입을 부추겼던 넓은 금리차를 유지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홍콩 통화청은 추가적인 강세 개입을 해야 할 수 있으며, 이는 2015년에 실시했던 4,000억 홍콩달러 규모의 개입을 초과할 수도 있습니다.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파괴적인 가능성은 연준이 예상치 못하게 다시 금리를 인상하는 경우입니다. 이는 금리차를 더욱 확대시키고, 홍콩달러의 갑작스러운 약세를 유발하여 홍콩 통화청이 방향을 바꿔 홍콩달러를 매수함으로써 통화 가치를 지지해야 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1998년의 재현: 이중 공격의 망령
현재 상황은 홍콩이 1998년 아시아 금융 위기 당시 통화 투기 세력과 벌였던 치열한 전투를 떠올리게 합니다. 당시 홍콩 통화청은 통화 시장과 주식 시장을 동시에 공격하는 '이중 공격' 전략에 맞서 주식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전례 없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러한 시나리오가 곧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오늘날의 환경이 당시와 certain 유사점을 공유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1997~98년 위기를 경험했던 한 헤지펀드 매니저는 "이러한 대규모 유동성 유입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역학 관계가 역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며 "모든 유동성 급증은 다음 가뭄의 씨앗을 심는다. 오늘날 자본 이동의 속도와 규모는 1990년대보다 훨씬 크다"고 경고했습니다.
홍콩 통화청은 그 이후로 방어 시스템을 현대화했습니다. 주식 시장과 통화 시장을 분리하기 위한 다양한 '방어벽'을 도입했습니다. 또한 역외 위안화 사업의 발전과 '후강퉁(Stock Connect)', '본드 커넥트(Bond Connect)', '스왑 커넥트(Swap Connect)' 같은 커넥트 제도 확대는 홍콩과 중국 본토 간의 자본 이동을 위한 양방향 채널을 만들었습니다.
투자 전략 가이드
이러한 환경을 헤쳐나가야 하는 투자자들에게는 자산 종류와 투자 기간에 따라 명확한 투자 기회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단기적으로(13개월) 보면, 홍콩달러 현금과 단기 채권은 수익률이 3% 아래로 떨어지면서 매력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은행주는 16개월 기간으로 볼 때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합니다. 은행 부문의 대출 성장과 수수료 수입이 순이자 마진 축소 효과를 상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부동산 개발업체는 유동성 주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취약하며, 구조적인 역풍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시장 전략가들은 변동성이 큰 부동산 관련주의 일시적인 상승세에 대해 '비중 축소'를 조언합니다.
더 긴 안목(3~12개월)을 가진 투자자들에게는 통화 정책 방향이 달라지면서 예상되는 시장 변동성 증가를 활용할 수 있는 홍콩 주가 지수 옵션 같은 변동성 상품, 특히 '롱 스트래들(Long Straddle)' 포지션이 유용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투자 방식 외에도, 일부 정교한 투자자들은 지정학적 긴장 고조나 집중적인 투기 공격에 대한 비교적 저렴한 보험으로 '미국달러 콜/홍콩달러 풋 옵션' 같은 '꼬리 위험 헤지(Tail-risk hedges)'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게임의 판도를 바꿀 변수들
몇 가지 예측 불가능한 요소들이 홍콩의 금융 환경을 크게 바꿀 수 있습니다. 미중 간 긴장이 다시 고조되어 특히 기술 제재가 심화될 경우, H주에서 자본 유출이 발생하여 홍콩 통화청이 갑자기 초과된 홍콩달러를 흡수해야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중국 본토가 예상보다 공격적인 경기 부양책을 내놓으면, 본토 투자 자금이 홍콩 중개 회사를 통해 유입되어 환율 변동 폭의 상단이 더욱 혼잡해지고 홍콩 통화청의 더 큰 개입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디지털 홍콩달러(e-HKD)' 개발과 중국 인민은행과의 '다중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연계 프로젝트(mBridge)'가 2026년까지 미국달러를 통한 결제 의존도를 줄이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는 페그제 시스템 내에서 미묘하지만 잠재적으로 중요한 변화가 될 수 있습니다.
흐름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서다
홍콩의 빛나는 스카이라인 위로 저녁이 드리우고, 은행과 금융 기관들의 불빛이 한 번 더 회복력과 통화 안정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도시를 비춥니다.
현재의 유동성 급증이 금융 시장 전반에 걸쳐 어려움과 기회를 동시에 제시하고 있지만, 시장 참가자들과 당국 관계자들은 모두 근본적인 통화 구조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 중국계 투자은행의 외환 전문가는 "페그제가 위험에 처한 것은 절대 아니다"라며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기계적인 개입을 통해 안정을 유지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의 정상적인 작동일 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투자자, 기업, 그리고 홍콩 시민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단기적인 유동성 물결을 타야 한다면 타겠지만, 동시에 지평선을 주시하고, 어쩌면 미국달러 옵션과 부동산 매도 포지션이라는 구명조끼를 가까이 두는 것이 좋습니다.
홍콩 통화청의 세 차례 개입은 홍콩 금융 시장에서 자본의 흐름이 놀라운 속도와 힘으로 바뀔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입니다.